15. 4. 13.

나는 이미 죽은 건지도 모르겠다.

어제 저녁에는 못난 나 때문에 눈물이 났다.
내 직장인생에서 승진은 없나보다. 인정은 없나보다. 성과는 없나보다.

밤을 새워 책을 읽었다.
아프간 여성들보다 나은 내 처지에 감사하려는 목적으로 사력을 다해 읽었다.
잠깐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.

부모님은 늘 내가 원하는대로 다 했다고 생각하시지만
나는 내 삶을 별로 살아본 적이 없다.
꿈을 키우지 못했고
늘 누군가의 딸로 과잉보호를 받으면서 컸다.
내 평생을 자의적으로 보호자의 의도대로 살았다.
그리고 기회의 순간마다 나는 늘 고민에 빠져 뒷걸음질 치다가 쉬운 길을 선택했다.

그래서 과거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 귀결되었다.
내 행복은 남자에게서 얻을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다.
가족에게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.
잠깐의 휴식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.
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.
왜 더 빨리 가족과 남자와 과거로부터 독립하지 않았을까.

나는 돈을 많이 벌고, 일을 재밌게 할 때 행복을 느낀다.
잠시나마 학교 때 공부나 프로젝트나 교생등의 학업과정에서
스스로 우수하다고 느꼈을 때 나는 행복했다.
그 후로는 늘 우중충한 하늘 아래에 서 있는 기분이다.

누군가 강제로 나에게 제약을 줬던 적은 없었다.
그냥 나는 꿈을 한 번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었다.
내 장미빛 미래에 대한 멍청하고 추상적인 낙관외에
구체적인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진 날이 없었다.
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.

나는 점점 이 생에서의 행복을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.
아무런 기반도 없는 나에게 사회적인 성공을 이룩하기에는
너무 위축된 심리상태로
그냥 위쪽 세상만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이렇게 자책하고 있다.

여자로서 젊음이 다 지나가고, 뼈져런 차별과 모멸감을 느끼면서
마지막 기회는 남자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
내 선택은 또 쓸데없이 정의롭다.
불공정 거래를 할 능력도 마음가짐도 되어있지가 않다.

점점 미래에 대한 막연하고 긍정적인 가능성의 크기도 줄어든다.
패배감만이 남아있다. 세상에서 제일 가치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.
내려놔야 한다.
그러면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다.
생각없이 즐기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데.
카르페디엠, 인생 즐기기가 안된다.

여행도 전환을 가져다주지 않기 시작했고
그 어떤 의지도 안 생긴다.
내 뇌가 고장난걸까?

그냥 생각없이 한걸음 한걸음 걸어도 마르고 좋은 땅만 밟는 사람이 있는가하면
한걸음 한걸음마다 생각하고 고민해도 질퍽한 땅만 밟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.
그런 재주는 타고나는 것일까?

사주팔자쟁이 말대로 나는 억세게 운이 나쁘지만 그냥 나름 맷집이 좋은 사람인걸까?
그냥 쓰러지고 싶어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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